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즈가타케의 칠본창 (문단 편집) == 개요 == 賤ヶ岳の七本槍(しずがたけのしちほんやり/시즈가타케노 시치혼야리). [[하시바 히데요시]]가 [[오다 노부나가]] 사후 후계자를 놓고 [[시바타 카츠이에]]와 시즈가타케 전투(1582년)를 벌일 때, 자신의 시종이자 경호를 담당하기 위해 가까이 있던 근위시동들에게 공을 세우라고 출전시킨 부하 7명이며 줄여서 칠본창(七本槍)이라고 칭한다. '칠본창'이란 명칭은 히데요시가 자기 시동을 띄워주려고 만든 게 아니냐는 설이 대세이다. 당시 일본에서는 다케다 24장, 도쿠가와 4천왕, 구로다 24기 등과 같이 장수나 무사 몇 명을 묶어서 대외적으로 선전하는 호칭을 만드는 캐릭터(?) 어필이 아주 흔했다.[* 일본만이 아니라 전근대 동아시아 문화가 다 그렇듯 중국에서부터 시작됐다. 후한의 [[운대 28장]], 당나라의 [[능연각 24공신]], 삼국지의 [[사마팔달]], [[죽림칠현]], [[오호대장군]] 등과 여말선초의 [[두문동 72현 전설]], [[사육신]]과 [[생육신]] 같은 것이 예시] 무사의 가문 출신이 아니었던 히데요시는 다른 다이묘와는 달리 자신을 섬겨오던 가신(후다이 가신)이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대외적 이미지가 더욱 필요했음은 자명하다.[* 그러나 이런 이미지들의 다수는 에도시대 이후에 창작된 경우가 적지 않기에 이것이 당대의 창작이라 확신할 수는 없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